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다 료스케 (문단 편집) === 가족애 === [[파일:야마다7.gif]] 형제로는 누나 한 명과 여동생 한 명이 있다. 야마다가 어렸을 때 누나와 자주 다퉜지만, 커서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들이 야마다의 험담 같은 것을 늘어 놓은 적 있다. 그때 누나가 “걔, 그런 애 아니야!”라고 해서 야마다가 고마워했다고. 야마다는 여동생을 정말 아낀다고 한다. 유행하는 [[갸루 패션|갸루 메이크업]]도 안 하고 오빠에게 받은 용돈을 성실히 모아 운전면허 시험을 봤는데, 한번에 합격했다며 좋아했다. 정말 성실하다고 인터뷰에서 여러 번 칭찬한다. 또 야마다와 야마다 누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 야마다와 누나는 생일이 이틀밖에 차이 나지 않아 어릴 적 생일 파티를 같이 했다.], 여동생이 제과제빵 전문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했다. 이를 본 야마다는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이외에도 여동생이 실연을 당했을 때, 밤새 고민을 들어 주고 로케에서 여성복 매장에 들렸을 때, 여동생을 위한 옷도 골라 주었다. 이후 밝히지만, 여동생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로 희귀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여동생의 생일은 특별한 날로 기념하여 가족 전원이 꼭 모인다.] 자신은 로케를 갔던 곳의 기념품을 사 주거나 외롭지 않게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여동생 덕분에 스노우돔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이때부터 스노우봄 키트를 구매하여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또 여동생과 같은 병실의 난치병 환자에게 병이 나으면 JUMP의 콘서트를 보러 오라고 했는데, 전혀 가능성이 없던 상태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어 퇴원이 가능했다는 편지를 받았다. 자신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구나”라고 느껴 정말 기뻤다고. 여담으로 야마다의 아버지는 팬들에게 유명한데, 굉장히 짙은 얼굴의 소유자이다. 쌍커풀과 코 때문에 야마다가 혼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양인처럼 보인다. 아들 콘서트를 항상 보러 오신다는 야마다의 인터뷰처럼 팬들이 알아보고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팬들이 알아보자 도망가며 “아저씨는 연예인이 아니에요~!”라고 외쳤다는 다소 귀여운 일화가 있다. 철도 관장으로 있다가 지금은 은퇴하셨다. >말은 무한의 힘을 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결코 말이 많은 편은 아닌. 그래서 언제든지 한마디 한마디 있는대로 전부 생각을 담아왔다. >그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기한 힘이 있다. 그런 야마다가 전하는 메시지. >야마다 집에서는 옛날부터 가족의 생일에 전원이서 요세가키(롤링페이퍼)를 해서 선물해 주는 관습이 있어. 아버지는 같은 남자이니까 뭔가 부끄러워서 “생신 축하드려요”, “"땡큐” 같은 문자를 주고받기로 끝낸 적 있어. 어머니, 누나, 여동생한테는 매년 메시지를 받고 있고 나도 반드시 쓰려고 하고 있어. 그렇다고 해도 편지라는 게 문자랑 비교했을 때 자기가 쓰고 있는 느낌이 강해서 꽤나 솔직한 감정을 전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어머니한테는 쑥스러움을 숨기고 “항상 건강하게 있어 주세요... 할머니(웃음)”, 누나에게는 장난을 치면서 “변하지 말고 바보인 채로 있어 줘!”라고 쓰거나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 안 나는 해도 있어. 그런데 작년 여동생이 20살을 맞이한 때의 요세가키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어머니가 여동생에게 보냈던 “건강한 20살의 모습을 보여 줘서 기쁩니다”의 메시지. 그걸 본 순간 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 왜냐면 여동생은 그 해까지 살아 있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올해 24시간 TV의 스페셜 드라마 '엄마, 나는 괜찮아'에서 주연을 하는 것이 정해지고 처음으로 대본을 봤을 때, 주인공과 내 자신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가지 생각으로 북받쳤어. 3인 형제의 가운데로 태어난 것,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해 온 것, 그리고 막내가 병에 걸린 것. 내 여동생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전국에서 10명 있을까 말까한 큰 병과 싸웠어. 몇 번이고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만족하며 등교하는 것조차 되지 않았던 여동생에게 가족과 내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건 쓸쓸하지 않도록 많은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일로 방문했던 장소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었어. 많은 지지가 있었고 가족의 연도 더욱 강해졌다고 생각해. 그런 여동생은 매년 나의 생일 선물의 요세가키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오빠가 있어서 나는 행복해. 료스케, 엄청 좋아해”라고 써 줘. 어머니나 누나에게도 표현의 방법은 다르지만, 좋아한다는 감정을 전해 줘. 지금까지 받았던 요세가키는 전부 소중하게 방에 모아놔서 가끔씩 생각날 때 다시 읽어 보면, “가족이란 좋구나”라고 마음 깊이 생각해. >여동생이 입원했을 당시, 일의 틈을 이용해서 병문안으로 도착한 병원의 무균실에는 나를 응원해 주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어. 의사 선생님께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작게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나의 의지로 그 아이의 병실을 방문하기로 했어. 투명한 커튼을 사이에 두고 작게 이야기를 하면서, 분명히 마지막에는 “건강해지면 JUMP의 라이브에 놀러 와”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그로부터 2주 후 나에게 도착한 것은 여자아이의 상태가 순식간에 좋아져서 퇴원했다는 보고였어. 의사 선생님께서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병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게 진짜였네”라고 깜짝 놀라셨어. 내 자신도 놀랐는데, 무엇보다 엄청나게 기뻤어. 퇴원 후에 어머니께서 건강해진 여자아이의 사진과 감사의 편지를 보내 주셨을 때, 다시 한번 “내가 특별하고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어. 그리고 마음을 담은 메시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줘. 그때 이후로, 나는 계속 그렇게 믿고 있어. >---- >Myojo 진홍의 소리 Vol.30 메시지 中 최근 독립해서 사는 바람에 일을 할 때는 지갑에 항상 형제들 사진 넣어 놓고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